인공지능 로봇에게 시민권을 주는 나라가 생기더니 이제는 급기야  AI를 '신(神)'으로 섬기는 종교가 탄생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미국 온라인 잡지 '와이어드(Wired)'는 22일(현지시각) 구글 출신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브스키(Anthony Levandowski)가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이라는 교회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지금 레반도브스티는 이 교회의 사제와 최고경영자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의 목표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개발한 AI를 신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 예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수십 억배 현명한 존재라면 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이폰이 등장하고 스마트 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10여 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과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하고 있다. 전에 소설이나 영화에서 볼 수나 있던 일들이 이제는 현실 속에서 생활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진화할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인공지는이 인류를 대적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제는 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까지 등장한 것이다. 

참으로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결국은 우상숭배이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우상 숭배는 결국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것이 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뱀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 할 때 한 말은 "너희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어도 죽지 않을 뿐더러 하나님과 같이 되어 눈이 밝아질 것이다"라는 것이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 선악과의 과실을 따먹은 것이다.  

대만 사람들은 종교심이 강하다.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다. 절이나 사원에 가면 부처와 도교의 다른 신들이 어울려 있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들 죽은 신이라는 것이다. 대만 사람들이 많이 섬기는 신 중에 하나가 '관우' 이다. 관우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들을 불렀는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관우를 신으로 섬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내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우상숭배이다. 이것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 곳이 이스라엘 광야에서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 산에 올라가 있을 때 내려 오는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다' 이 신을 섬겨라'고 하면서 황금송아지를 경배하였다. 누가 만들었는가? 이스라엘 자신들이 만들었다. 스스로 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것을 신으로 섬기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떠나 교만한 악한 마음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신들이 신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 수록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더 의지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의지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장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인공지능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들이 수십년에 걸쳐 연구하여 얻을 수 있는 답을 인공지능은 이제 순식간에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공지는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 명칭대로 만들어진 지능일 뿐이다. 인공지능은 인간들의 본성인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악한 본성을(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충족해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더 철저하게 사람들이 악한 본성을 따라 살도록 유혹하며 섬기게 할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참진리를 깨달아  눈에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분별하며 참된 영혼의 삶의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간구해야 할 일이다. 세상이 보여주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의 빛으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참 행복을 누리는, 진정으로 내가 인간으로서 사는 길이 될 것이다.